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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음악 생활/나의 음악 일상

[25.03.27] Punk Rock~! 동호회 공연을 마치고... (feat. 나에게 베이스는...)

by S2N | PARK 2025. 3. 27.

셋리스트 작성... 편의점에서 급하게 구한 이력서 종이에 작성했다.

 

#1. Punk Rock?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즈음, 우리는 고등학교 입시를 이유로 항상 방과 후에도 추가 수업을 받았다. 물론 우리는 다들 자신이 어떤 고등학교를 가게 될지 각자 대충 예상하고 있었기에,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시간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했다. 우리는 당시 왕성하게 활동을 펼쳤던 Linkin Park, Sum 41, Greenday 등등의 밴드들을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수업이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비슷한 밴드 취향을 가진 우리는 '야, 이 노래 들어봤어?', '이거 베이스가 진짜 쩔어.'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렸다. 무리 중 한 친구는 이미 진로를 실용음악으로 정하기도 했었으니, 그 음악들이 꽤나 삶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존재였나보다.

 

나는 음악 듣기도 좋아했지만, 연주에도 관심이 생겨서 중학교 여름 / 겨울 방학 때를 활용해서 통기타를 배우기도 했다. 일렉기타를 배워 위의 밴드들의 멋진 곡들을 직접 연주하고 싶었지만, '일렉기타를 배우려면 통기타부터 배워야 한다.'는 당시 부모님의 조언을 따라서 통기타를 배웠던 것이다. 수많은 악기들 중에서도 일렉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밴드들보다 앞서 들었던 일본의 비주얼 록 밴드, Janne Da ArcMr. Trouble Maker라는 노래를 듣게 된 후이다. 이전에도 장르에 대한 인지없이 락 음악을 들었었겠지만, 락 음악이 '멋진 음악이구나.' 를 처음 느낀 노래는 이 노래였다. Mr.Trouble Maker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일렉기타의 깔끔하면서 강렬한 플레이도 돋보이지만, 도시적이면서 몽환적인 베이스기타의 슬랩 솔로 또한 멋져서, 당시 중학생이던 나의 머리에 강렬하게 꽂혀 버린 것 같다.

일렉기타베이스기타 모두 당시 내게는 굉장히 생소한 악기들이었다. 심지어 당시 나는 두 개의 악기를 구분하지 못해서 당시 교회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는 형이 일렉기타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베이스는 당시에 내겐 '저게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피아노나 보컬이 담당하는 익숙하고 명랑한 소리보다, 그 보다 2옥타브 낮은 음들은 그 때의 나의 귀에 막 노크를 하고있던 때였나보다. 결국 나는 일렉기타가 좀 더 존재감있고 강력한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부모님께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공허한 약속(...)를 대가로 고1 때에 일렉기타를 처음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Janne Da Arc - Mr.Trouble Maker

 

 

#2. Punk Bass?

일렉기타를 선택한 나에게 베이스 기타는 항상 신비의 영역이었다. 요즘이야 '베이스 열심히 쳐도 안들림ㅋ'와 같은 반은 사실인(?) 밈이나 '메가 우클렐레'라는 밈으로 인해 놀림받고 있지만, 학생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각종 동아리와 찬양팀에서 활동하며 느낀 것은, 베이스 플레이어들은 소위 '숨은 고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깨닫기 전의 나는  (물론 각자가 자기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도 크지만) 베이스의 소리는 귀를 특별히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함께 합주한 수많은 베이스 플레이어들의 걱정 어린 얼굴로 묻는 '지금 내 소리 어때?'에 영혼 없이 엄지만 척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모종의 사유로 연습에 빠지거나, 엔지니어의 귀여운 실수로 그들의 소리가 모니터에서 자취를 감추는 날에는, 나를 포함한 밴드원들이 마치 엽떡에 치즈추가를 깜빡한 치팅데이의 다이어터들 마냥 아쉬운 얼굴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베이스 플레이어들이 그저 묵묵히 밴드의 사운드를 견인해가는 듬직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후 나는 일렉기타의 자리에서 수많은 베이스 플레이어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베이스 플레이어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존경이 관심이 되었고, 으레 모든 기타쟁이들이 그렇듯, 결국 언제 쓸지도 모르는 베이스 기타를 덜컥 사버리고 말았다. (현재 나의 베이스는 Yamaha社TRBX605FM 모델이다.)

 

다행히도 각종 밴드나 찬양단에서 베이스 플레이어들은 전설의 포켓몬 마냥 귀하디 귀한 존재들이었다. 내가 다녔던 교회는 드럼과 키보드 주자는 그들의 수가 매우 많아서 저 멀리 보이는 나의 순번을 기다리며 풍족하고 여유로운 사역을 펼쳤지만, 베이스기타의 자리는 항상 '저 놈이 오늘도 치는구나.'의 자리였다. 그렇기에 공석이었던 본가 교회의 저녁 예배들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베이스 플레이어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에, 본가와 다른 지역의 학교를 다니며 본가 교회를 오갔던 나는, 오전 금요일 수업을 모두 끝마치고 본가로 내려가 금요예배 베이스를 섬기고, 주일 저녁 예배에 베이스를 섬긴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지?" 라는 의문이 드는 스케쥴을 소화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길어지니 다른 글에서...)

 

어쨌든 당시 나는 보통 여느 취미 베이시스트와 마찬가지로, 발라드나 락 위주의 장르의 초보적인 핑거 베이스 연주로 모든 곡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어디까지나 일렉기타에 대한 열정이 베이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컸기 때문에, 더욱 "베이스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라는 욕심은 매우 적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기회가 닿아, 지금 회사에서 Punk Rock 장르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고, 처음으로 회사 외부에서 대관 공연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3. Punk Bass!

Punk하면 생각나는 위에서 언급한 GreendaySum41을 생각하겠지만, 내가 속한 밴드의 첫번째 커버 목표는 Turnstile이라는 밴드였다. 2024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밴드에 대해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나도 굉장히 생소했지만, 그 유명한 '과도한 락놀이'를 일으킨 주범(?)이었다. 이 사건은(?) 무대에 관객들을 불러모아 마지막 곡인 'Holiday'를 화려하게 장식한, 대한민국 락 페스티벌에 유래없던 사건이었던 것이다. (지금 동호회 밴드 멤버 중 두명도 이 무대에 올라갔었다고 한다...)

 

위의 셋리스트를 보면 총 9곡으로 공연을 했는데, 모두 이들의 곡으로 꽉꽉 채워 눌러 넣었다. "9곡이라니 힘을 많이 주었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노래는 2분도 안되는 매우 짧은 노래도 많아, 정신차려보니 끝나있는 곡들도 있어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공연이 끝나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인, 공연을 끝낸 소감은... 나의 에너지를 쏟는 무언가가 생겨서 기쁜 감정이 들었다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내가 연주로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 의외로 생소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교 때의 동아리 공연도 밴드 특성 상, 많은 사람들이 많이 접해보지 못한 곡들을 연주했었고, 내가 제일 많이 시간을 쓴 교회의 찬양단은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되는 노래들이었다. 연주를 하는 나 조차도 오히려 연주를 하고 있음에도 '연주를 하는 나'의 모습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활동이다보니 그렇다.

 

하지만 같은 연주라도 동호회 속에서의 연주는 조금 다른 차원의 활동이었다. 음악을 음악 자체로 즐기고, 이를 듣는 이들과 소통한 경험은 꽤나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다. 연주는 우리가 듣는 이들에게 "내가 이런 곡들을 연습하고 준비했어요!" 라는 단방향성 소통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곡"이 메인이 되고, 그 속에서 누구는 '연주하는 사람'으로, 누구는 '연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함께 뛰놀며 즐겁게 놀았던 경험에 가까웠다는 것이 신기했다.

 

 

 

#4. 마치며

공연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 우리가 대관한 장소의 사장님께서 우리를 꽤나 인상깊게 보신 것 같다. 6월 21일에 Open Mic. 행사에 우리를 초대해주셨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를 초대하여 주신 만큼, 대관비는 물론 받지 않고, 앞에 팁 박스로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라고 하셨다.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에 '기술과 가정' 시간에 직업의 정의가 '어떤 일의 전문성을 살려 서비스를 제공하여 을 버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어설프고 난장판에 왁자지껄, 정신없이 기타를 두들기지만(?) '돈받으면 프로임ㅎ'이라는 철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기억은 내 삶에서 가장 값진 경험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 끝나면 또 소감을 남겨야겠다.